퇴적공간 - 왜 노인들은 그곳에 갇혔는가(오근재 지음, 민음인, 2014)
책의 지은이는 대학교수를 정년퇴임하고서야 노인이 되어버린 자신을 의식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자리하고 있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노인들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지은이는 국내에서 전통적인 가족 제도가 해체되고 가족의 돌봄을 받을 수 없게 되어버린 시기를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보고 있는데 당시 도입된 ‘세계화 전략’을 그 시작이라 한다.
지은이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사례를 들며 우리 사회의 노인에 관한 현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데 일본의 소설이자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나라야마부시코>의 내용은 씁쓸함을 전해준다. 노부를 산속에 버리고 오는 일명 고려장이 풍습이 되고 미화되기까지 하는 상황을 통해 지은이는 지금 우리 사회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가족 안에서 존중받고 도움을 받아야 할 노인들을 국가가 관리대상으로 정형화 해버리는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지은이는 노인 우대 교통카드를 예를 들면서 현재 국내의 노인복지 상황은 오히려 노인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키고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고 보고 있다. 지은이는 박완서의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인용하고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인용하면서 노인이 쓸모없는 잉여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신설동의 어느 삼거리를 향해 꼴찌로 달려오는 마라토너의 표정에서 그때까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과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보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관중의 환호 없이 달리는 꼴찌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산문은 삶의 부조리함에 낙담한 자들, 실패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희망을 잃지 않기를 염원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작가 박완서는 꼴지의 정직한 고통과 고독을 통해 1등의 형상을 위해 봉사하는 질료의 세계를 엿보았는지도 모른다. -p.68-』
지은이는 노인들이 모여 있는 탑골공원을 사회적 퇴적공간이라 칭하고 있다. 그는 노인을 이 시대의 퇴적물로 바라보는 사회 현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직접 탑골공원으로 향한다.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그 곳을 찾아 갔지만 곧 본인도 노인임에 대하여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본인 스스로 관찰자의 입장도 아니고 참여자의 입장도 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어쨌든 그는 탑골공원에서 관찰자이자 참여자로 노인들의 모습을 탐색한다. 종묘 시민공원의 활기찬 노인들의 모습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세계의 감흥을 느끼기도 하고 암묵적으로 정해진 그곳의 규칙들을 깨달으며 노인의 길에 한 발 내딛는다.
낙원상가에 있는 노인전용 극장 “헐리우드 클래식”에서 십대 후반에 보았던 서부활극 “쉐인”을 다시 관람한 지은이는 몸도, 마음도 너무나 변해버린 자신을 자각하며 극장을 나선다. 이제는 헐리우드 영화의 영웅주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지적 수준을 갖춘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젊음과 그 시절의 감성이 아쉽기도 하다. 극장을 나서는 본인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고독한 노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실버영화를 보고 극장을 떠나는 나의 뒷모습을 어떤 소년이 보았다면 나를 클래식 영화를 사랑하는 예술가적 취향을 가진 멋쟁이 할아버지로 볼까 아니면 처진 어깨선에서 피어오르는 고독한 노인으로 볼까. 후자의 눈길을 던질 것이 틀림없다. 영화의 질적 수준과는 상관없이, 종합 상영관의 이용객인지 재생영화 상영관의 이용객인지가 문화 향유 계층을 재는 척도가 되어 버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p.109-』
관찰자로서의 여정은 “서울노인복지센터”로 향하는데 이 시설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으며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조선시대 ‘기로소’에 대한 설명을 함께 함으로써 한 세기만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결론적으로 지은이는 현 시대의 노인복지센터는 근본적인 노인복지의 해결책이 아님을 주장한다.
『복지센터가 모든 노인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는 기관이 아니라 노인들과 함께하는 가정과 공동체를 지원하는 간접 지원기관이 될 수는 없을까. 그래서 국가가 모든 개별자를 상대로 책임지려는 무모함으로부터 벗어나 가정과 공동체와 더불어 그 부담을 나눠지려는 정책으로 복지 문제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p.122-』
자아란 무엇인가? 노인의 길에 접어든 지은이는 삶의 본질에 대해 묻고, 생각한다. 사회에 속해있는 구성원으로서 본질적으로 자신에게만 속해있는 순수 자아는 존재하기 불가능하다고 한다. 사회적 기대나 요구에 속해있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자아의 일부라고 한다. 이러한 자아의식은 “얼굴”로 표상되는데 지은이는 탑골공원에 모여 있는 노인들에게서 더 이상 사회적 얼굴이 필요 없는, 표정 없는 얼굴을 마주하며 “잉여 얼굴”이라 표현하고 있다. 탑골공원은 이 시대의 “잉여 얼굴들”의 수납공간인 것이다. 탑골 공원을 나와 종로 3가역 지하철로 향한 지은이는 그 곳에서 독특한 공간에 주목한다. 종로 3가역 지하철 1호선과 3호선의 연결 통로이다. 그 곳에 앉아서 끈임 없이 흐르는 인파를 바라보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15세기 문인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를 떠올린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영원한 숙제를 마주하고 있는 선비의 모습이다. 또한 종묘시민공원에서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빗대어 노인들의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즉 자신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격리되어 떠밀리다시피 이곳을 찾은 노인이 아니라 어떤 처지의 노인들이 그곳을 찾으며 또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한두 번 둘러보는 관찰자로 남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관찰자로 남고 싶어 한다.’라는 것은 근로 공간의 시민이 되고자 하는 기대 심리를 반영하는 표현이다. 그들은 그렇듯 소박한 소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들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이중적 처지에 전율한다. -p.156~p.157-』
작가가 처음에 썼듯이 이 책은 완전한 관찰자의 시선도, 참여자의 시선도 아닌 그 어디쯤 적절한 시선에서 쓰였다. 하지만 그 어디쯤 위치한 시선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결국 외부인으로는 표면적인 것 이상을 얻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내부인으로는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이제 막 노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상황에 처했기에 그 누구보다 적절한 시선으로 우리에게 노인의 현실, 복지, 문제점 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동안 노인문제를 외면하고 노인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 빠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가 공감을 얻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치열하게 움직인다. 이런 상황에서 평생 지식인으로 살아온 노 작가가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들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뛰어난 예술적 지식을 바탕으로 공간과 사람에 대해 풀어낸 이야기들은 여러모로 읽는 재미까지 더해주고 있다. 하지만 작가처럼 자신의 능력을 노년기까지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 노인은 점점 쇠락하는 육체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불변의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 한편이 묵직한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노인 복지정책, 노인을 대하는 시선 등에서 문제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작가의 주장이 정답은 아니더라도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노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가 노인복지의 시작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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