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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기심이 낳은 결과물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부산행>은 영화 초반에 배우들의 약간 어색한 연기를 제외하곤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스토리는 별것 없지만 나름대로 긴장감이 있고 진부하지만 항상 잘 먹히는 눈물 코드도 적절히 섞여 있다.

특별히 잔인한 장면도 없어서 여름 시즌 킬링타임용으로 쉽게 보기에 부담이 없다.

<곡성>보다는 더 대중친화적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차, 빌딩,비행기 등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액션이나 위기상황에서 어린이와 임산부, 노약자를 내세워 긴박감을 조장하는 것은 액션, 재난, 호러 영화에서는 흔히 보이는 설정이다.

이미 워킹데드에서 좀비 드라마의 쫄깃함을 맛 본 사람이라면 <부산행>의 재미는 약할 수도 있겠지만 워킹데드를 못봤거나 일부러 비교하지 않는다면 나름대로 재미있다.

돈을 많이 들인만큼 우려했던 CG나 좀비 분장의 어색함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2012나 인터스텔라, 월드워z 같은 영화의 어마어마한 CG에 비하면 새로울 것은 없다.

영화 후반부에서 아이가 절규하며 우는 연기는 상당히 뛰어났지만 그 이전에 계속해서 나오는 어른스러운 대사들은 조금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저것 다 섞어 놓으니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고 처음보는 영화가 탄생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이보는 블록버스터 좀비영화라는데 가장 큰 의의가 있겠다.




*** 찾아보니 영화 외적인 논란이 있었다. ***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의 "이기심"이다.

"나만 살면 돼!"라는...

영화 속 상황은 마치 지금의 헬조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무서운 것은 좀비가 아닌 사람. 이기적인 사람.

그런데 이 영화 <부산행>이 개봉을 앞두고 상도덕을 무시한 유료시사회를 감행했다.

개봉 전에 유료 시사회라는 명목으로 스크린수를 1000개 가까이 잡으면서 5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것은 다른 영화(특히 중, 소형 배급사의 작은 영화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잘 알다시피 작은 영화들은 스크린을 잡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것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개봉 후 반응이 안 좋으면 즉각 스크린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영화의 개봉일을 계산해가며 하루하루 스크린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산행 같은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정해진 개봉일을 지키지 않고 시사회라는 명목으로 스크린을 1000개 가까이 가져가면서 다른 영화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부산행 유료 시사회 관객이 그 시사회가 아니었다면 과연 다른 영화를 봤겠는가는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그에 따른 관객의 선택권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국내 영화계에서는 상당히 욕먹을 짓을 한 것임은 확실하다.

더구나 영화가 전하는 메세지가 인간 이기심에 관한 것이기에 영화 <부산행>의 행보는 동종업계에서 "나만 살면 돼!"라는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이기심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서서히 문제가 쌓여가면서 결국은 건강한 토양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했으니...


영화감독은 연상호, 주인공은 마동석, 정유미, 공유다.

연상호 감독은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돼지의 왕>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됐었고 이번 <부산행>으로 또다시 칸에 초청되었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는 입지를 다졌지만 장편 극영화는 이번 작품이 처음이다.

데뷔작으로 100억대 영화를 잘 만들었으니 대단하다 하겠다.

이렇게 스케일이 큰 영화는 제작 방식이 완전히 전문화, 분업화되어 있어서 어쩌면 큰 그림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미 그 역량은 충분했던 것 같다.

단지, 연상호 감독은 독립영화계에서 탄탄히 영역을 넓혀 오면서 인지도를 쌓았고 멋진 작품으로 극영화 데뷔를 했는데

자신의 본질을 잊어버린 채 대기업의 전형적인 횡포에 휘둘려버린 것 같아서 아쉽다.

제작사, 배급사에 정해진대로 개봉일을 지키자고 이야기 하기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나만 살면 돼?

그런거야?